유홍준 교수의 답사 분류에 따르면 이 책은 상(上)급 답사 보고서이다. 이름난 문화유적도 아니며, 화려한 명승지는 더욱 아니다. 심상한 여행객이라면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작고 초라한 우리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전문답사가, 여행전문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저자는 지난 15년 동안 들길을 따라 우리의 산하를 누볐다. 전국의 웬만한 도로, 하천은 눈감고도 환히 꿸 정도로 국보, 사적, 기념물 등 전국의 문화유산들을 섭렵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오랫동안 남는 것은 번듯한 문화재가 아니었다. 그리움의 대상은 정작 포장되지 않은 삶의 흔적과 여행중 마주치게 되는 공동체 문화의 끈끈한 유대와 인정이었다.
이후 저자의 여행은 ‘풍속 기행’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그에게 풍속은 ‘겨레가 살아온 눈물어린 자취’요, ‘민족의 운명과 생사를 같이해온 삶의 편린’이다. 때문에 그의 기행은 목적은 있되 목적지는 따로 없다. 역사 향기 그윽한 들판, 민초의 삶의 체취가 밴 바닷가, 무심한 구름에 안긴 청산(靑山) 등 바람따라, 구름따라 발걸음 닿는 곳 어디든 훌륭한 답사지이다. 흙먼지 날리는 남도의 들녘에서 그는 순박한 미소로 맞아주는 돌장승과 친구가 된다. 부릅뜬 눈으로 풍찬노숙하며 동네 어귀를 지켜왔던 장승은 더이상 마을 수호신이 아니다. 허허로운 들판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장승은 이제 전설이 되어버린 마을의 역사를 여행자에게 전해준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전남 화순군 가수리에서 마주친 솟대는 농촌 마을을 신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을 바깥이 불안과 혼돈의 세상이라면 마을은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공간이자 우주의 중심이 된다. 높다란 장대 위에 나무로 깎은 새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하고 있는 솟대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해주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민속의 보물섬’ 진도에 이르러서 저자는 우리나라 무속의 원형인 ‘씻김굿’을 목격한다. 망자의 넋을 위로하고 이승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씻김굿의 현장에서 저자는 또 한명의 무인(巫人)이 된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진행된 굿판의 한장면 한장면을 빠짐없이 채록한 씻김굿 보고서는 어떤 민속학자의 현장보고서보다 생생하다.
책은 민속, 마을 풍경, 장인(匠人), 향토축제를 주제로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민속에서는 진도 씻김굿, 줄다리기, 남근석, 장승, 솟대, 띠뱃놀이, 장승제가 소개된다. 마을 풍경 편에서는 섬진강의 산골마을(임실 장산리), 진도소리의 고향(진도 소포리), 도당굿과 줄광대의 마을(경기 광주 무갑리), 답성놀이와 고인돌의 왕국(전북 고창), 백제 진혼굿의 본산(부여 은산리), 남근을 깎아 바치는 여신의 마을(삼척 신남리), 백두대간의 종착지(지리산 청학동) 등이 맛깔스러운 글과 시원한 사진으로 되살아난다. 또 염색장, 사기장, 한지장, 옹기장 등 옹이진 삶을 이어온 장인들과 진주 의암별제, 초의문화제, 바우덕이 축제 등에 대한 기록은 민속 다큐멘터리로서도 손색이 없다.

風俗, 세월이 머물다간 자취

■ 겨레의 혼이 담긴 민속
저승길 넘나드는 진도 씻김굿
성의 유희로 풍요를 기원하는 축제 줄다리기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성 신앙 남근석
돌 속에서 피어난 미소 장승
아아, 눈보라 치는 날의 솟대여
거친 파도와 싸우는 뱃사람들의 풍어제 띠뱃놀이
칠갑산 마을의 대보름 축제 장승제

■ 정겨운 마을, 그리운 풍경
굽이굽이 섬진강 따라 도는 순결의 땅 전북 임실군 장산리
추야장장 기나긴 밤 어메들의 노래 진도 소포리
잃어버린 도당굿의 전설과 줄광대의 귀향 경기도 초월면 무갑리
머리에 돌멩이를 이고 극락왕생 기원하는 답성놀이 전북 고창
1300년을 이어 온 백제의 진혼굿 부여 은산리
남근을 깎아 바치는 여신의 마을 삼척 신남리
백두대간의 종착지 지리산 청학동

■ 옹이진 삶을 이어 온 장인들
가슴 저미는 조선의 색채를 되살린 염색장 한광석
문경 막사기 가마터의 숨은 이야기 사기장 김정옥
마지막 남은 조선 기와굴이 하나 있었네 기와장 한형준
베틀가를 부르며 살아온 한평생 곡성 돌실나이 김점순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인생 채상장 서한규
은은하고 질긴 조선 종이의 멋 한지장 장용훈
생명을 담는 그릇에 매료된 옹기장 이현배

■ 역사의 향기 그윽한 향토축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어 주는 거룩한 제사 종묘제례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남강의 넋이여 진주 의암별제
단종의 외로운 넋이 떠도는 땅 영월 단종문화제
백제 최후의 슬픈 역사를 기리는 백제문화제
에라 차라리 안성 청룡사 남사당이나 될거나 바우덕이 축제
차 한 잔의 마음 차 한 잔의 깨달음 초의문화제
바닷길이 열리는 날 펼쳐지는 영등축제

이형권 - 1961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전남대 국문과와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녹두꽃」, 「창작과비평」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학시절 이태호 교수에게 한국미술사를 사사받고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답사전문가가 되었다. KBS 다큐멘터리 작가로 활동했고<경향신문>,,<한국일보>,,<한겨레신문>, 등에 여행 칼럼을 연재했으며 KBS 라디오<신국토기행>,과 EBS<역사 속으로의 여행>,을 진행했다. 1993년부터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강사로 초청되어 우리 역사와 문화, 국토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답사기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앙공무우너교육원, 경찰대학, 금융연수원 등에 출강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문화유산을 찾아서>,<그리운 곳에 옛 집이 있다>,<산사>,<풍속기행>,<어린이 문화유산 답사기 1.2.3>, 등이 있으며, 다음 카페<여행, 바람처럼 흐르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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