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불량소년''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불행히도 내겐 ''불량소년백서''를 건네준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내 삶이 ''우량''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고, 지금도 역시 멀다는 것즘이야 안다. 그래도 가끔은 억울하다. 인생에는 불량해도 좋은, 아니 불량''해야만 하는'' 시절이 있는 법이니까. 그 불량의 시절을 겪어야만 인생이 온전해지는 법이니까. 김현진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눈꺼풀 깜박거리는 일도 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 바로 불량소녀다"라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30년전부터 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던 바로 그 말이니까. 세상은 더럽게도 아직 바뀌지 않아 아직도 우리는 그 말을 반복해야 한다. 다만 세상께서 황공무지하게도 쬐끔은 바뀌어주시사 이제 그 말이 책으로 나왔다. 불량소녀들이여! 현진이 언니와 함께 세상을 팍팍 바꿔주시라!
-조병준(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나(我) - 불량소녀가 말하는 김현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20대 중반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다. 귀찮은 것과 참견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석 달 만에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삶이 나름대로 한 격동 하는 쪽으로 급선회했으며, 그 경험으로 넋두리의 정수, <네 멋대로 해라>(1999, 한겨레신문사)를 썼다. 운 좋게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했으나 타고난 게으름 때문에 6년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제발 졸업하고 사라져 달라는 주변의 지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있다.
각종 생활고와 끈질기게 고투하며 섹시하지도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은, 도무지 세상이 바라는 미덕이라고는 갖춘 게 없는 젊은 여자가 도대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존비법을 모색하고 있다.
모색 과정에서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안다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열정, 용기, 의리의 삼박자를 갖춘 대담 발랄무쌍한 청춘기 신여성들의 대규모 조직화를 우선 수행과제로 삼아 일단 본인의 아무렇지도 않고 잘나지도 않은 불량기 있는 삶을 발랑 까놓기 위해 <불량소녀백서>를 썼다.
오토바이와 조용필을 좋아하며, 쪼잔한 모든 것을 싫어한다. 여자애들이 겪을 수 있는 인생의 삽질은 거의 다 저질러, 주위로부터 굴착기계의 신혁명을 일으켰다는 긍정적 평가와 네 삽질로 인해 한강의 지표가 1미터 낮아졌다는 악담을 동시에 듣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으므로 흔들리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다. <불량소녀백서>에 이어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칼 맞을 짓을 해 왔는가를 다룬 남자 이야기 <사랑하는 악마>와, 도시빈민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다룬 모험담 <시시함에 바친다>를 준비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

20대 미혼 여자는 모든 것의 원흉?
흔히 10대 중후반부터 20대 초중반의 시기를 꽃처럼 좋은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 그런가? 물론 예쁘고 보송보송한 순간이 있다. 하지만 소위 소녀시대 전 기간의 일부일 뿐이다. 실제로 소녀들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하고 비정한 삶을 살고 있다. 소녀들은 온갖 몰매를 맞고 살아간다.

뚱뚱하면 살 빼라고 난리, 살 빼려고 난리치면 요즘 젊은 여성들의 외모지상주의가 문제라고 난리, 예쁘지 않으면 범죄라고 난리, 예뻐지려고 칼 댈라치면 성형중독에 성형열풍이 불어 말세라고 난리, 섹시한 여자가 인기니 빨리 섹시해지라고 난리, 섹시해지려고 하면 걸레라고 난리, 청순해지려고 하면 재미없다고 난리, 물건 좀 샀다간 젊은 여성들 과소비라고 난리, 강간당하면 밤에 다닌 게 잘못이고 분명 짧은 치마를 입었을 거라고 난리, 불황이라 여성들 치마 길이가 짧아진다며 경제불황까지 굳이 여성들 치마 길이로 따지며 난리, 요즘 젊은 여자들 애 낳기 싫어해서 출산율이 저하됐다며 인구까지 여성들 책임이다.

현모양처냐 팜므파탈이냐 - 두 개의 길만 있다고 누가 말했나
소녀들은 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사회적 문화적 강요를 받으며 자란다. 두 가지 길은 현모양처의 길과 팜므파탈의 길이다. 현모양처를 지향하는 여성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모두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어른들, 친구들, 심지어 남성들도 그녀를 좋아하며 숭배하기까지 한다. 팜므파탈은 섹시함이 가장 큰 무기다. 그들은 도도한 검은 고양이처럼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을 자기 혼자 차지한다. 숱한 남자를 유혹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에 친구도 마음을 함께 나눌 사람도 없다. 도무지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은 얼른 어느 길로나 가라고 채근한다. “예쁘지도 않은 게 착하지도 않으면 어쩔 셈이냐?”며.

아무도 말하지 않은 길 또는 불량소녀의 길
현모양처와 팜므파탈, 둘 다 누군가에게 나를 제공하며 살아남는 방식이다. 현모양처는 안식을 주고, 팜므파탈은 판타지를 준다. 그런데 불량소녀는 나를 제공해서 살아가는 방식을 거부한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나’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바로 불량소녀다. 그녀들은 외모, 학벌, 돈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불량소녀는 공짜는 구려서 거저 줘도 먹지 않고 외모를 팔아서 살려고 하지 않으며, 자기만의 세상을 꿈꾸는 줏대가 있고, 불의를 보고 나 몰라라 하지 않는 용기가 있으며, 진정 행복한 연애가 무엇인지 알며, 세상의 친구에게 ‘매력적인 걸’하고 말할 줄 아는 의리의 소녀다. 가진 것도 빽도 없지만 이 험난한 세상을 내 깃발 나부끼며 용감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아름다운 여자들이다. 그들은 생각한다.
‘남들이 좋다는 게 나쁜 거야. 우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거야’라고.

불량소녀로 살기 위한, 불량소녀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4계명

*물질(物) - 불량소녀는 매대에 놓인 상품이기를 거부한다
여성들은 왜 쇼핑을 좋아할까? 돈이 넘쳐나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서, 전혀 아니다. 쇼핑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결코 골빈 여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려는 것이다. 불량소녀는 말한다. ‘쇼핑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강인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의 표현’일 뿐이라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로 나를 만들려고 하는 몸짓’이라고.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은 소녀들의 돈만을 원할 뿐,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끊임없이 소녀들이 불만족을 재생산하려고만 할 뿐이다. 그래서 불량소녀는 자기만의 잣대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꾼다는‘미의 철학’으로 무장해야 한다.
세상은 소녀들에게 끊임없이 다이어트 하라고 강요한다. 살이 찌면 여자도 아니라면서. 뚱뚱하면 건강에 해롭다는 입에 발린 말도 슬쩍 끼워 넣는다. 여기에는 어느 면에서 보나 약자인 소녀들을 재물로 삼으려는 음흉한 의도가 숨어 있다. 게다가 그 수많은 다이어트 기구, 다이어트 약 등으로 대표되는 다이어트 산업의 교묘한 상술도 한몫 거든다. 그래서 수많은 여성들이 전혀 비만이 아니면서도 죽기살기로 ‘살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심지어 죽기까지 한다. 불량소녀는 이런 바보 같은 대열에 동참하지 않는다. 설사 다이어트를 한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건강을 위한 행동일 뿐이다. 말랐건 통통하건 나는 나이기 때문에.
세상은 소녀들에게 끊임없이 매대에 올라갈 것을 주문한다. 소녀들이 가진 젊음을 팔라고. 비싼 값에 나를 팔기 위해 주저없이 올라가는 여성들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대가는 누군가가 지불해야 한다. 불량소녀는 나를 파는 짓은 하지 않는다. ‘내가 먹은 밥값은 내가 낸다’를 생활의 모토로 내걸고 있다. 그래서 불량소녀는 남자 뜯어먹는 데 목숨 건 여자를 정말 싫어한다. 혼자 뜯어먹고 끝나면 좋은데, 그 대가를 대부분 다른 여자가 지불하기 때문이다. 결국 ‘매대에 올라가는 것’의 문제는, 자기는 물론이고 덤으로 다른 여자들까지 같이 매대에 올려버리는 데에 있다.

* 말(言) - 불평을 하자, 신나게
소녀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입에 담지 못할 온갖 말들을 듣고 산다. 대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더라도 그렇게 대접받아온 게 하루이틀이냐며 그냥 넘긴다. 하지만 불량소녀는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이 참으면 다른 여자도 밥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한 사람을 슬며시 즈려밟은 다음 다른 여자도 밥으로 삼아 쓱싹하고 괴롭힐 게 뻔하기 때문이다. 불량소녀는‘그러게요, 광선검’ 전술을 쓴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부정하지 말고 긍정하며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상대방이 머쓱해하며 물러나도록. 또 하나 ‘필살기 키보도’ 전술이 있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사는 소녀답게 인터넷을 통해 부당함에 맞서는 것이다. 이때는 고도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조목조목 논리정연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면 백이면 백 성공한다. 개인을 공격하는 증오에 찬 무차별 악플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않는 게 최고의 대응이라고 불량소녀는 말한다.

*남자(男) - 행복한 연애를 위한 남자 감별법
소녀들은 행복하게 연애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소녀들은 남자들을 너무 모른다. 그래서 불량소녀는 배드 가이 도감을 만들었다.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 중이며 주변의 불량소녀들에게 뿌릴 예정이다. 불량소녀라면 다른 소녀들이 더 이상 배드 가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업데이트 하고 이 도감을 뿌려야 한다.
도감 1장에는 속지 말아야 남자의 거짓말이 담겨 있다. 남자가 ‘다 널 위해서 그런 거야’ 하는 말의 속뜻은 ‘다 날 위해서 이러는 거야.’이고, ‘옛날이 좋아서’하고 말하면 ‘난 지금 세상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고, ‘그건 일반적이지 않지 않니’ 하는 말은 ‘난 그게 마음이 안 들어’라는 뜻이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냐’ 하고 말하면 ‘그냥 내 말대로 해’하는 강요가 들어 있다.
도감 2장에는 절대로 연애하지 말아야 할 남자의 목록이 들어 있다.
동물을 학대하는 남자, 욕을 잘하는 남자, 피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 여자의 오르가슴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 여자의 오르가슴에만 관심을 갖는 남자, 옷차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남자, 내가 곤경에 처하기를 바라는 남자, 혼자 놔두면 굶는 남자, 자기 어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아는 남자 등이다.

*행동(行) - 불량소녀로 당당히 살자
왕관 쓴 공주 대신 온갖 현대판 공주를 양산하고 연애를 찬양하는 시대. 사회는 공주가 되라고 될 수 있다고 연애를 하라고 이룰 수 있다고 끊임없이 소녀를 꼬드긴다. 하지만 불량소녀는 ‘동화 속의 공주’를 거부한다. 공주의 삶은 너무 기괴하고, 또한 그 속에는 음모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량소녀라면 재투성이라도 행복하다. 재투성이가 바로 나이고, 그런 나를 내가 좋아하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또 다른 불량소녀들이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래서 불량소녀는 ‘살이 쪘든, 허벅지가 두껍든, 쌍꺼풀이 없든 숨 막히게 매력적’이다.
불량소녀는 전혀 기죽지 않고 혼자 밥 먹으며 나와의 데이트를 즐기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자신만의 멋진 스타일을 창조하며, 특히 동료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걸 참지 않는다. ‘누군가 친구를 보고, 엉덩이가 너무 크네, 눈이 작네, 살을 빼야겠네 어쩌고 저쩌고 하면 어깨를 한번 으쓱하면서 말한다. 그러면 어때, 그녀는 매력적인 걸!’
그래서 불량소녀는 ‘예쁘다고 말해 주기’즉, ‘아낌없이 칭찬해주기’를 또 다른 모토로 삼는다. 참으로 단순한 이 전략은 물신의 거대한 음모에 맞서 불량소녀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한 첫 스크럼이다.